파푸아뉴기니 경찰 사령관의 부인 마마루시와 9시에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이 다 되어가 1시간 전부터 모든 준비를 마치고 기다렸다. 하지만 9시 15분이 되어도 마마루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의 남편도 아들도 모두가 연락이 되지 않았다. 95%가 기독교인 이 나라에서 교회 성가대 합창단의 노래가 듣고 싶어 함께 교회를 가기로 했는데 어쩐 일인지 나타나지 않았다.
“미안해요 레미, 그녀는 워커홀릭(일 중독자)이에요. 아마 오늘도 일을 한다고 늦나 봐요. 그녀는 항상 늦어요. 레미가 이해해주세요. 사실 그녀 뿐만 아니라 파푸아뉴기니 사람들은 모두 약속시간보다 늦는 경우가 많아요.”
난감한 표정으로 로즈가 이야기했다. 로즈는 처음 공항에서 만난 세 자매 중에서도 맏이였다. 그녀의 놀라운 혜안은 동생들이 고민이 있을 때마다 속 시원하게 풀어주곤 했다.
그녀는 동생들과 피가 섞이지 않았음에도 동생들이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랐다. 그녀가 진심으로 몇 번이나 시간 약속에 대한 부분을 지적해도 이것은 어떻게 고쳐지지 않는다고 했다. 무려 2시간을 기다렸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고 노만과 동네 구경을 하기로 했다.
혹시 도착하면 노만에게 전화해달라고 남기고 노만과 함께 나와 길을 걸었다. 노만은 이곳 포트모르즈비 와이가니마을에서 유명 인사였다.
“헤이 형제들 안녕! 잘 지냈어?” 노만은 길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인사했다. 이 나라를 뜬지가 이미 8년은 되었음에도 모두가 노만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시간약속을 잘 지킬 뿐 아니라 매사에 웃음이 넘친다. 누구든 한 번 보면 그의 웃는 얼굴과 흥이 넘치는 모습이 각인되는 것 같았다. 그의 노하우는 나에게도 전해졌다. 노만이 전해준 파푸아뉴기니 사람들과의 소통의 기술이다.
“레미! 이렇게 한번 말해 봐요. Blue or Maroons!?”, “Blue or Maroons?
이게 뭔데 그래요?”
“파푸아 뉴기니를 대표하는 럭비팀 이름이에요. 사람들이 블루나 머룬스 둘 중 하나는 꼭 좋아하거든요. 한명 한명한테 물어보면 다 달라서 편안하게 웃는 분위기가 만들어질 거예요.”
“오 그거, 재미있네요, 한번 해볼 게요.”
그리고 정해진 길 대신 자동차들이 버려져 있는 길을 따라가는데, 노만이 말렸다.
“레미! 여기는 작은 소부족이라서 문화가 다를 수 있어요. 자칫하면 실례가 아니라 위험할 수도 있는데 그냥 큰길로 다니는 게 어때요?”
“괜찮을 거예요. 걱정하지마세요. 무슨 일 생기면 먼저 도망가요. 저는 걱정하지 말고, 저는 잘 따라 갈게요.”
“휴…. 알겠어요, 한번 가보자구요. 명심해요, 가정집 같은 곳은 울타리 들어가기 전에 먼저 소부족 대표에게 허락을 맡고 들어 가야해요.”, “걱정 마세요.”
버려진 자동차가 군데군데 있는 숲길을 따라가니 40년은 된 듯 군데군데 크게 금이 가 있어 내려앉기 직전처럼 보이는 집이 몇 채 보였다. 밖에서 수차례 불렀으나 아무도 대답이 없어서 마당으로 들어갔다.
“여기 왠지 좀 불안해요, 그냥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괜찮을 거예요, 들어가 보자구요.”
큰 담요나 이불 같은 빨래가 입구 군데군데 널려있어 안이 잘 안 보이는 곳이라 하나씩 헤치고 들어가는데 마지막 세 걸음 앞에 녹슨 칼을 든 남자가 있었다. 그의 바로 뒤에는 큰 나무가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경계하는 눈빛의 여자가 앉아서 무언가를 만지고 있었다,
“헬로우! 아임 레미! 도레미! 프럼 사우스 코리아!”
칼을 보는 순간 걱정과 긴장이 조금 되었지만 태연하게 말을 걸었다. “Hello.” 짧고 간결한 그의 대답에 노만은 대화에 끼어들지도 못하고 뒤에 얼어 있었다. 붙임성이 좋은 그도 파푸아뉴기니의 세틀맨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블루 올 머룬스!?”, “what?” 인사 다음 바로 가르쳐 준대로 럭비팀 취향을 질문하자, 칼을 쥔 손을 허리춤에 올리며 ‘잘 못 들었다. 다시말해봐라’는 식으로 고개를 내밀었는데 그 모습이 사뭇 위압적이었다.
“Blue or maroons!?”, “Blue” 그의 대답을 듣고 바로 부인으로 보이는 여성에게 물어봤다.
“Blue or maroons!”, “머룬스!”
둘의 대답이 다르자 멋쩍은 듯 서로 마주보고 웃었다. 그들의 웃는 얼굴을 보자 주변이 밝아지면서 한겨울 서리가 내리는 듯했던 마을에 봄눈 녹듯 따뜻해지며 안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분홍색과 노란색 꽃나무 들이 보였다. 마침 그 남자는 코코넛을 따서 자르던 중이었고 자기가 먹으려던 코코넛을 우리에게 줬다. 그 부족 가족들과 함께 사진도 찍고 나오는데 노만이 한마디 톡 쏘아붙인다.
“다음에는 큰길로 갑시다.”, “하하 그러죠.”, “하나 더 가르쳐드릴게요. 블루 올 머룬스라고 물어보고 무슨 대답을 하든 “쏘 유 지기지기?” 라고 하세요. 모르긴 몰라도 굉장히 크게 웃을겁니다.”
“한번 해볼게요.” 마침 앞에 택시회사가 보였고 문 앞에 5명 정도의 기사가 비틀 넛을 씹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바로 앞에는 우산을 양산처럼 쓰고 가는 커플이 보였다. 천천히 걸어서 그들이 가까워지길 기다렸다가 그들 모두를 불러세웠다.
“헬로우! 아임 레미! 프럼 사우스 코리아!”
“어디?(where?)”. “꼬리아 꼬리아! 싸우스 꼬리아”, “노 놀쓰 코리아 에? (No north korea e?)”, “예스 하하 싸우스! 앤드 블루 올 머룬스!?”, “블루!”, “유?”, “블루!”, “유?”, “블루!”
나머지는 손바닥으로 가리키기만 해도 대답을 했는데 “블루!”,“블루!”, “머룬스!”
단 한 명 양산 쓰고 가는 커플 중 남자만 머룬스를 좋아한다고 대답을 했다. 그 광경이 재미 있었던지 사람들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머룬스가 파푸아뉴기니의 수도 팀이고 블루는 다른 도시의 팀이라고 했다. 머룬스라고 대답한 청년을 손바닥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쏘 유 지기지기?”, “와하하”, “깔깔깔” 그 청년 혼자 민망해하고 나머지는 박장대소를 했다. 그렇게 함께 행복한 분위기 속에 사진을 함께 찍고 나오며 노만한테 물어봤다.
“지기지기가 무슨 말이 길래 사람들이 저렇게 좋아하는 겁니까?”, “별거 아닙니다. 영어로 생각하면.. 흥분돼?, 이 정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나이는 30대 후반에 미혼인 그는 누구와도 잘 어울리고 항상 주변을 웃게 만든다. 어떤 사람이라도 그 앞에 오면 안면근육이 무장해제 되는 것이다.
“참 노만 당신은 신기한사람이에요.”, “하하 아닙니다. 자 이제 집에 들어갈까요?”
“네 그렇게 하죠.” 점심시간도 다가오고 집에는 가야해서 가지만 아직도 연락이 오지 않은 마마루시에게는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블루 올 머룬스”를 질문했고 지기지기 필살기까지 내보이면 누구든 금방 친구가 되었다. 그 어떤 풍경보다 사람에 감동을 받게 된다.
협찬:
August 10, 2020 at 03:35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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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용복의 세계탐험[29] 파푸아뉴기니 (下) - 경남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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