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귀엽지 않아’ 1회 두살 때 다발성 뇌수막염, 시한부 판정 받은 ‘봄이’ 퇴사 뒤 SNS에 간호일지 쓰는 ‘전담 수의사’ 하지윤씨
하지윤씨와 그의 반려견 ‘봄이’
사람이 즐거움을 얻기 위해 기르는 ‘애완동물’ 의 시대는 지난 지 오래다 .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반려동물 = 귀엽다’ 는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곤 한다 . 그 공식이 어긋나면 혼란스러워 하고 ‘피치 못한 선택’이라며 생명을 내다버리기도 한다. 그들도 병이 들고 늙기도 하는,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존재인데 말이다 . ‘애완’의 의미를 벗어나 진정한 ‘반려’ 의 의미를 찾는 평범한 사람들과 그들의 특별한 가족들을 소개한다 .
반려동물이 입양할 때 모습 그대로 영원히 내 곁에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면 과도한 욕심이다. 우리네 인생이 그렇듯 예기치 못한 일은 늘 일어나기 때문이다. 예기치 못한 일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핑계로 결심이 흔들리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끝까지 책임질 수 있다면 입양하세요.” 지난 15일 경기도 화성시에서 첫번째 주인공 하지윤씨를 만났다. 지윤씨는 반려견 봄이를 위해 봄이의 전담 ‘수의사’로 생활 중이었다. -간단한 소개 부탁드려요. “하지윤입니다. 지금은 백수인데 어떻게 보면 봄이를 돌보는 게 제 직업이기도 한 것 같아요. 봄이를 전담 마크하고 있거든요.”
“(강아지를) 데려와서 행복하게 할 자격이 나에게 있는가, 나 행복하자고 데려오는 건 아닌가? 고민을 정말 많이 했어요.” 고민을 하던 중 지윤씨는 유독 몸이 작고 약해 입양을 못 간 채로 친구 집에 있던 봄이를 만났다. 그렇게 2016년 겨울, 봄이는 지윤씨네 가족이 되었다. 조그만데 공처럼 빨리 뛰어다니고 공원에 가면 모든 강아지들이 다 알 정도로 활발했던 봄이를 지윤씨는 ‘동탄 인싸’였다고 회상한다. 하지만 2019년 2월, 봄이는 다발성 뇌수막염을 진단받았다. 좋지 않은 예후로 받게 된 1~2년이라는 시한부. 이후 지윤씨와 봄이의 일상에는 변화가 생겼다.
지윤씨의 표현대로 ‘아무것도 모른 채로 배회한다는’ 봄이. 집안의 곳곳에는 잘 못 걸어 미끄러지는 봄이를 위한 러그가 깔려있다.
-봄이의 병을 어떻게 알게 되셨죠? “제가 첫 월급을 받고 집에 왔는데 아빠가 봄이가 발작을 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추워서 그랬겠지, 추운데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그랬을 거야’라고 했는데, (봄이가) 다음날 아침에도 제 다리에 붙어서 발작을 하고 있었어요. 바로 병원에 데리고 가서 MRI를 찍었고 (뇌수막염을) 진단 받았어요.” _______
반려동물도 시한부 판정을 받는다 -봄이의 발작 사실을 들었을 때 병을 예상하셨는지 궁금해요. “제가 (봄이를) 데려온 이후, 몰티즈가 선천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질병들이 있다는 걸 공부했었어요. 특히 뇌수막염이나 뇌수두증이 흔한 편이라고 해서 발작하면 바로 MRI를 찍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요. 다만 뇌수두증이기를 바랐었죠. 그나마 그게 더 예후가 좋아서요. 근데 안타깝게도 뇌수막염이었고…. 병 진행 속도도 되게 빨랐어요.” -병이 진행된다는 것을 어떻게 체감하셨나요? “발작을 하고 2~3일 정도를 못 걷고 점점 앞이 안 보이는 것처럼 행동했어요. 사람도 앞이 안 보이면 두리번두리번하듯이 (봄이도) 두리번두리번하면서 하늘을 계속 쳐다봤고요. (안 보여서) 당황하니까 빨리 돌아다니면서 어디를 막 부딪혔어요. 그렇게 (뇌수막염을 진단받은) 한 달 반 만에 왼쪽 시력을 잃었고 오른쪽 눈도 서서히 안 보이게 되어서 지금은 거의 앞을 못 봐요.”
봄이의 언니, 오빠인 지윤씨 남매
-언니(지윤씨)를 알아보긴 해요? “아니요, 못 알아봐요. 올해부터 인지(능력이)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작년에는 불렀을 때 알아듣고 특히 좋아하는 단호박 냄새 맡아서 쫓아오기도 했어요. 지금은 모든 신경 감각이 떨어진 상태라 이름을 불러도 못 듣고 그냥 돌아다니기만 해요. 아무것도 모르고 배회하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치매와 비슷한 증상일 수도 있어요.” 예전의 봄이는 냄새만으로도 사람을 알아보고 반겨주는 것도 달리했던 똘똘한 아이였다. 하지만 이제 대부분의 감각을 잃어 지윤씨가 “언니야!!!”라고 외쳐도 알아보지 못한다. 마비된 신경은 봄이를 제대로 걷기조차 힘들게 만들었다. -얼핏 보기에 걷는 모습은 괜찮아 보이는데…. “자세히 보시면 봄이를 기준으로 왼쪽 다리가 꺾여 있어요. 아이들의 신경 증상을 판단할 때 (구부러진 다리가) 1초 만에 안 펴지면 문제가 있는 거래요. 근데 봄이는 계속 구부리고 있어요. 그래서 걸을 때도 미끄러지듯 걷고 서 있는 것도 힘들어해요.”
봄이의 장난감 인형들로 빼곡한 지윤씨 집 안. 아프기 전 ‘놀보’였던 봄이를 위한 장난감들은 이제 벽에 부딪히지 않도록 봄이를 보호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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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후…균형을 찾기까지 미디어와 스토리텔링을 전공한 지윤씨는 다니던 광고회사를 퇴사하고 봄이의 간호에 전념하게 되었다. -퇴사까지 쉽지 않았을 텐데요. “당시 (회사에) 강아지가 아프다는 것을 말하긴 했어요. 아마 이해는 못 하셨을 수도 있어요. 저도 그만두기까지 정말 어려웠거든요. ‘이렇게까지 (간호를) 해야 할 일인가’ 싶기도 했고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그렇게 되지 않았으니까요. 근데 봄이가 제가 없는 자리에서 발작했을 때 그때 이제 안 되겠더라고요. (눈에 안 보여서요?) 네, 안 되겠더라고요. 안 되겠어서….” 대신 지윤씨는 자신의 취미를 살려 컷툰을 그리며 자신과 봄이의 삶의 균형을 찾아가고 있었다. ‘비건, 그리고 아픈 반려견의 이야기를 그립니다’라는 주제로 지윤씨는 현재 ‘채시키’라는 필명으로 활동 중이다. 2020년 1월부터 인스타그램에 업로드되기 시작한 이야기들은 <내년 봄까지만>, <봄이의 간호일지> 등 봄이와 지윤씨의 일상을 담는다.
지윤씨가 그리는 컷툰 ‘간호일지’
-봄이와의 이야기를 컷툰으로 그리시던데요, 계기가 있으세요? “인스타그램에 ‘아지’라는 강아지가 있는데 얼마 전에 무지개다리를 건넜어요. 근데 그 친구의 보호자 분이 간호를 굉장히 잘 해주셨거든요. 영양제나 밥에 대한 정보를 많이 얻었는데 저도 그렇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컸어요. 그리고 강아지를 위해 이렇게 일을 그만두면서까지 (간호를) 한다는 것에 의문을 갖는 생각들에 반박하는 심정으로 ‘이게 별거 아닌 일이 아닌데, 별거인데’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어요.” -봄이를 간호하는 일상은 어떤가요? “힘들죠. 스테로이드 부작용도 있고 먹는 약도 많아서 보통 네 시간 주기로 하루에 6번 밥을 먹어요. 어떻게 보면 신생아 키우는 것과 똑같아요. 그만큼 외부를 못 나가고 사회활동이 안 되니까요. 제가 돌봐서 아이가 나아진다면 힘든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사실 가장 힘든 것은 아이의 상태는 제가 노력하는 것에 비해 나아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봄이의 ‘최애’ 간식 단호박에 영양제를 넣는 지윤씨
-그런 지치는 감정은 어떻게 해소하세요? “기분 전환할 겸 밖에 나가 산책을 한다거나 한두 시간 운동하면서 풀었지만 그래도 참 웃긴 게 나가면 봄이 생각밖에 없어요. 그래서 다시 들어와요. 금방 (집으로) 들어와서 봄이를 보면 그때 마음이 편안해져요. 붙어있으면 힘들지만, 또 붙어있으면 행복하거든요. 가끔은 힘들어서 화가 나기도 하는데 봄이한테 너무 미안해요. 이 아이는 잘못한 게 하나도 없잖아요. 그러면 다시 (봄이를) 안고 봄이에게 위로를 받죠.” 지윤씨의 어머니는 겨울에 태어난 봄이에게 얼른 봄이 왔으면 한다는 바람으로 ‘봄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봄이에게 그 이름처럼 다음 봄도, 그다음 봄도 찾아오기를. 이주연 교육연수생 102557@naver.com
이성희 교육연수생 dong_gram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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