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 문화평론가]
아들이 유럽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택배 알바를 하겠다고 했을 때, ‘그래 얼마나 견디는지 보자’는 생각으로 가만히 지켜봤다. 쿠팡 택배 창고는 집과 멀리 떨어져 있었다. 부모 입장에서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녀석을 그 곳까지 데려다 주긴 했다.
새벽에 나가 밤늦게 돌아온 아들은 파김치처럼 넉다운이 됐다. 아들은 배달 시간이 부족해 빵 한 조각 겨우 먹고 할당된 목표치를 채워야 했다는 말을 무용담 삼아 말하곤 했다. 하지만 나중엔 차라리 군대가 훨씬 편했다고 쑥스럽게 '고백'했다. 결국 두 달간의 빡 센 사회 체험을 마치고 다시는 이런 알바는 하지 않겠노라고 선언하면서 인천공항을 떠났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 전세계가 한국을 가장 부러워했던 것은 바로 물샐 틈 없는 배달 물류 시스템이었다. 미국처럼 사재기로 슈퍼가 거덜 날 일도 없었고 방역 중무장을 하고 생필품을 사러 위험한 거리로 나서야 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손가락 클릭 몇 번이면 일용할 양식과 생필품을 집 앞에서 편히 받아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택배기사들이 입에 단 내 나게 뛰어야 했던 척박한 노동현실이 도사리고 있었다.
사회파 감독으로 정평이 나 있는 켄 로치(Ken Loach)감독은 이번에는 택배를 직업으로 한 평범한 남자의 일상에 주목했다. 평생 건설 현장에서 일해온 리키(크리스 히친)는 하던 일이 지지부진 하자 다른 일을 찾았다.
그가 이번에 택한 직업은 택배원이다. 그래봐야 리키는 우리식으로 하면 개인사업자나 자영업자에 불과했고 배달을 하기 위해선 차가 필요했다. 결국 리키는 직업 간병인인 아내 애비(데비 허니우드)의 차를 팔아 새 차 구입에 필요한 보증금을 마련한다.
그는 이제 매달 할부금을 갚기 위해 주 6일 매일 14시간씩을 바쳐 중노동을 해야만 한다. 여기에 아내 애비에게는 환자를 돌보기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 고행이 추가된다.
고달프고 신산스런 삶에 자꾸 비뚤어져 만 가는 아들과의 갈등이 더해지고 택배 회사가 부과하는 할당량과 갑질의 강도는 높아져 간다. 리키를 둘러 싼 사면팔방이 그의 목을 조르는 듯 하다. 이대로 삶의 끈을 놔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는 어떻게 이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가족과의 화해는 가능하기라도 할까?
영화판에서 은퇴를 선언하고 다시 돌아 온 켄 로치 감독은 역시나 이번에도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영국 택배 노동자의 지리멸렬한 삶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와 가족과 직장 생활을 소재로 하여 서사의 정서적 공감대를 엮어 내는 솜씨는 그가 아직 우리 곁을 떠날 때가 아님을 보여준다.
개인의 비극을 통해 사회의식의 주제를 선명하게 보여줬던 그는 팬데믹을 겪고 있는, 아니 어쩌면 항상 마스크를 상비하고 역병과 싸워야 하는 인류에게 그럼에도 여전히 가져야 할 사회적 가치가 무엇인지 냉철하게 전해준다. 그렇다고 섣불리 어설픈 희망이나 비젼을 보여 주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영화는 살아남기 위한 고통을 감내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우리의 절박한 이웃, 혹은 먹고 살기 위해 아등바등 발버둥 치고 있는 내 자신의 이야기이기에 종국에는 가슴 한 켠을 눈물로 적시고 만다.
원제는 'Sorry, We Missed You'인데 수취인에게 전달하지 못할 때 택배인이 남기는 메모다. 최고의 폭염이 도처에서 우리를 기다리고있다. 우리 사회의 ‘리키’들에게 메모를 남기고 싶다. “시원한 물 한 잔 드시고 가세요”
June 22, 2020 at 02:57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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